[PeopleValue Inside] 7월호
- 4일 전
- 4분 분량
'경험의 멸종' 시대, 신입은 무엇을 보고 배우는가

'경험의 멸종' 시대, 신입은 무엇을 보고 배우는가
현장에서 자주 듣는 고민

신입이 잃은 것은 ‘업무’가 아니라 ‘어깨너머’다
기술이 어떤 분야의 전문성이나 숙련의 형성 정도를 어떻게 바꾸는지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 연구는 병원에서 나왔습니다. UC 산타바바라의 매튜 빈(Matthew Beane)은 5개 병원에서 2년간의 비교 문화기술지 연구와 미국 13개 상위 수련병원 인터뷰를 통해, 로봇수술이 도입된 뒤 레지던트의 실습 기회가 기존 개복수술 대비 10~20배 줄었다는 사실을 밝혔습니다(Administrative Science Quarterly, 2019).
주목할 점은 수술 건수가 줄어든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수술은 오히려 늘었고, 결과도 좋아졌습니다. 사라진 것은 초심자가 곁에서 손을 얹고, 선배의 판단을 실시간으로 관찰하던 ‘주변부의 자리’였습니다. 매튜 빈은 학습자들이 승인된 경로 밖에서 몰래 배움을 확보하는 현상을 ‘그림자 학습(shadow learning)’이라 불렀습니다.
지금 사무직에서 벌어지는 일도 구조가 유사합니다. 자료조사·초안 작성은 신입의 ‘잡무’가 아니라, 선배가 그것을 검토하고 반려하며 판단 기준을 드러내던 접점이었습니다. AI가 그 산출물을 대신 만들면 과업은 남지만 접점은 사라집니다. 우리는 이 상태를 ‘어깨너머의 공백’이라 부릅니다. 이는 반두라(Bandura)의 관찰학습, 그리고 레이브와 웽거(Lave & Wenger)의 ‘정당한 주변적 참여’가 말하는 학습 조건이 조직에서 소거된 상태를 현장 언어로 옮긴 것입니다. 경험의 멸종에서 로젠이 말한 ‘매개된 경험’은 조직 안에서 이렇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피플밸류그룹은 이를 역량의 문제가 아니라 경험 공급 구조의 붕괴로 봅니다. 경험의 필요가 없어진 것이 아니라, 저절로 쌓이지 않게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그래서 저희가 최근 컨설팅에서 가장 먼저 손대는 지점은 신입 역량정의입니다. "보고서를 작성할 수 있다"를 "보고서를 검토하고 수용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로 바꾸는 것. 역량의 정의가 바뀌면 육성목표가 달라지기 때문에 교육과제, 평가지표, OJT 설계가 연쇄적으로 따라옵니다. 실제로 그럴듯하지만 오류가 섞인 산출물을 의도적으로 제시하고 이를 걸러내게 하는 과제를 도입한 기업에서, 신입의 업무 이해도가 기존 매뉴얼 교육보다 빠르게 올라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만드는 훈련보다 가려내는 훈련이 전문성의 지름길이라는 점은 저희가 여러 프로젝트에서 반복적으로 목격한 결과입니다.
다만 근본적인 해법은 시니어에게 있습니다. 신입이 3년에 걸쳐 겪었을 판단의 순간들은 이미 조직의 선배들 머릿속에 있고, 그것을 꺼내 자산화하지 않으면 그 어떤 교육 프로그램도 공백을 메우지 못합니다. 피플밸류그룹은 시니어 인터뷰를 통해 '왜 그렇게 결정했는가'를 남기는 의사결정 아카이브 작업을 신입 육성 체계 개편의 출발점으로 제안드립니다. 경험의 종말은 육성의 종말이 아니라, 육성을 설계의 영역으로 옮겨야 한다는 신호로 우리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 관찰할 수 없는 것은 설계로 꺼내야 합니다
관찰학습은 모델의 행동뿐 아니라 그 행동의 ‘근거’가 학습자에게 보일 때 성립합니다. 정당한 주변적 참여 역시 초심자가 실무 주변에 머무르며 숙련자의 판단 과정에 노출되는 시간을 전제로 합니다. AI가 산출물을 대신 만들게 되면 결과만 남고 근거는 드러나지 않으므로, 두 이론이 가정한 학습 조건이 자연 상태로는 더 이상 충족되지 않습니다.
피플밸류그룹은 컨설팅 현장에서 “선배들이 안 가르쳐준다”는 말을 자주 듣지만, 실제로는 가르칠 장면이 사라진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교육 설계 시 선배의 판단을 드러내는 장치를 먼저 제안드립니다. 리더의 후배육성 교육 시 후배들의 업무결과에 대해 반려 혹은 수정 시 ‘무엇을-왜-대신 무엇을’ 세 줄로 남기는 피드백 양식, 주요 의사결정 직후의 3분 판단 로그, 리뷰 회의에서 결론이 아니라 기각한 대안을 함께 말하게 하는 운영 규칙 등입니다. 기록의 형식은 조직의 협업 도구에 맞춰 바꾸면 되고, 대면·비대면과 직군·산업을 가리지 않고 적용할 수 방식입니다.
결과물은 좋아졌는데, 판단은 자라지 않는다
마이크로소프트 리서치와 카네기멜런대 연구진은 지식근로자 319명에게 생성형 AI를 사용한 실제 업무 사례 936건을 수집해 분석했습니다(Lee et al., CHI 2025). 결과는 두 방향으로 갈렸습니다. AI에 대한 신뢰가 높을수록 비판적 사고를 덜 발휘했고, 자신의 역량에 대한 자신감이 높을수록 더 많이 발휘했습니다.
연구진이 함께 관찰한 질적 변화가 더 중요합니다. AI 사용 이후 비판적 사고의 성격 자체가 ‘과업 수행’에서 ‘정보 검증·결과 통합·과업 관리(task stewardship)’로 이동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합니다. 검증은 무엇이 틀렸는지 알아볼 기준이 있어야 가능한데, 그 기준은 대체로 직접 해보고 틀려본 경험에서 만들어집니다.
즉 조직은 신입에게 가장 나중에 생기는 능력(검증)을 가장 먼저 요구하고 있습니다. 자신감이 비판적 사고를 끌어올린다는 연구 결과를 뒤집어 보면, 성공 경험이 아직 없는 신입일수록 AI의 답을 그대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산출물의 품질과 학습의 깊이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지점입니다.
💡 ‘검증’은 역량 목록이 아니라 교육 과제로 다뤄야 합니다
연구가 보여준 조절 변수는 지식의 양이 아니라 자기효능감이었습니다. 반두라에 따르면 자기효능감은 설명이나 독려가 아니라 성공적 수행 경험에서 가장 강하게 형성됩니다. 검증 역량을 역량모델에 문장으로 추가하는 것만으로 행동이 바뀌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피플밸류그룹은 많은 조직이 ‘AI 리터러시’ 과정을 도입하면서 프롬프트 작성법에 시간을 쓰지만, 저희가 컨설팅 현장에서 더 효과를 확인한 것은 판별 훈련입니다. 의도적으로 오류·과장·출처 누락이 섞인 AI 산출물을 과제로 제시하고, 무엇이 왜 틀렸는지 찾아 고치게 한 뒤 선배의 기준과 대조하는 방식입니다. 정답을 만드는 과제보다 작은 성공 경험이 훨씬 빠르게 쌓입니다. 산업·직무별로 자주 발생하는 오류 유형만 교체하면 그대로 활용할 수 있고, 이는 온보딩뿐 아니라 직무전환·리스킬링 과정에도 같은 구조를 쓸 수 있습니다. 나아가 이 판별 결과를 평가·피드백 지표로 연결하게 되면 이러한 검증은 선언이 아니라 관리 가능한 행동이 됩니다.
숙련자는 무뎌지고, 신입은 아예 자라지 않는다
역량 감퇴가 실제 데이터로 확인된 사례도 있습니다. 폴란드 4개 내시경 센터를 대상으로 한 다기관 관찰연구에서, AI 폴립 탐지 도구 도입 이후 의사들이 AI 없이 시행한 대장내시경의 선종 발견율이 28.4%에서 22.4%로 떨어졌습니다(Budzyń et al., The Lancet Gastroenterology & Hepatology, 2025). 절대치 6%p, 상대적으로는 약 20% 감소입니다. 이미 숙련된 전문가조차 보조도구에 노출된 뒤 맨눈의 감각이 무뎌졌다는 뜻입니다.
숙련자에게는 ‘잃을 감각’이라도 있었습니다. 신입에게는 그 감각이 아직 형성되기 전입니다. 감퇴(deskilling)와 미형성(non-skilling)은 다른 문제이며, 후자가 조직에는 훨씬 늦게 발견됩니다.
학습은 이 지점에서 분명한 답을 갖고 있습니다. 마누 카푸어(Manu Kapur)의 ‘생산적 실패(Productive Failure)’ 연구는, 먼저 스스로 씨름하다 실패한 학습자가 처음부터 잘 짜인 안내를 받은 학습자보다 이후 전이 과제에서 더 나은 성과를 냈음을 보였습니다(Cognition and Instruction, 2008). 로젠의 표현을 빌리면, ‘실수와 실패가 편집된 경험’은 편하지만 남지 않습니다. 신입이 AI의 매끄러운 초안부터 마주하는 지금의 순서는, 학습이 일어나는 순서와 정확히 반대입니다.
💡 ‘잘 배우는 순서’는 ‘빨리 끝내는 순서’와 다릅니다
생산적 실패는 안내를 없애자는 주장이 아니라 안내의 순서를 바꾸자는 주장입니다. 먼저 스스로 씨름하며 만든 미완성 이해가, 이후 제공되는 정답과 설명을 붙잡는 고리가 됩니다. 순서가 뒤집히면 이해는 매끄럽게 지나가고 전이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피플밸류그룹가 신입 과정을 재설계할 때 가장 먼저 변화시키는 것은 콘텐츠가 아니라 과제의 순서입니다. 초안은 15~20분간 본인이 먼저 작성하고 그 다음 AI 결과와 대조하게 하는 ‘지연된 접근’, 정답 대신 자신의 초안과 AI 산출물의 차이를 설명하게 하는 리뷰, 그리고 실패해도 안전한 과제 구간을 명시적으로 확보하는 운영 원칙입니다. 이 구조는 집합교육·OJT·온라인 학습 어디에나 동일하게 적용되며, 시간과 난이도만 직무 특성에 맞춰 조정하면 됩니다. 덧붙여 현업 리더에게는 “AI를 쓰지 마라”가 아니라 “언제 열어보게 할 것인가”를 정해 주라고 요청합니다. 금지는 지켜지지 않지만 순서는 관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맺으며
세 가지 제언은 서로 다른 처방이 아니라 하나의 흐름을 이룹니다. 선배의 판단을 보이게 하고(형성), 신입이 스스로 판별해 보게 하며(전이), 실패가 허용되는 순서를 설계하는 것(유지) 입니다. 채용 규모나 역량 목록을 조정하는 일보다 느릴 수 있지만, 이는 경험이 쌓이는 자리를 조직 안에 다시 만드는 일에 가깝다고 저희는 생각합니다.
AI가 대신해 준 일들 가운데, 그래도 사람이 직접 겪어야만 하는 경험은 무엇일까요? 그 목록을 조직마다 다시 써 보는 일에서 신입 육성 설계가 시작된다고 우리는 믿습니다.
🥄 오늘의 스쿠퍼: 피플밸류그룹 김문숙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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